報怨以德 (원한을 은덕으로 갚음)과 以直報怨(곧음으로써 원망을 갚음)

2022. 11. 1. 23:16카테고리 없음

 

報怨以德 (원한을 은덕으로 갚음)과 以直報怨(곧음으로써 원망을 갚음)에 대하여

공자 곧음으로 원한을 갚으라고 권한다. (以直報怨 이직보원)

 

바울은 분노하거나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권장한다.

바울은 핍박을 받고 죽음의 고비를 맞이하면서도 원수를 갚은 일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고,

그리스도 교인들에게도 아래와 같이 같이 권장한다. 

로마서 12장 17절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로마서 12장 19절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로마서 12:19)

바울은 로마서 12장 19절에서 구약의 말씀을 인용한다.

신명기 새번역 32 장35 원수 갚는 것은 내가 하는 일이니, 내가 갚는다. 원수들이 넘어질 때가 곧 온다. 재난의 날이 가깝고, 멸망의 때가 그들에게 곧 덮친다.

 

다윗은 사울이 집요하게 공격하면서 살해하려고 하여도 직접 보복하지 않고 하나님께 탄원하는 길을 택한다.

시편 54:5 주께서는 내 원수에게 악으로 갚으시리니 주의 성실하심으로 그들을 멸하소서

 

다윗은 원수를 갚은 일은 하나님께 탄원한다.  

 

 

 

 

공자 곧음으로 원한을 갚으라고 권한다. (以直報怨 이직보원)

혹자가 가로대 “덕으로써 원망을 갚음이 어떠합니까?” 

공자 가라사대 “무엇으로써 덕을 갚을꼬? 곧음으로써 원망을 갚고, 덕으로써 덕을 갚느니라.”

論語 제14 憲問(헌문)편 37장 : 以直報怨 以德報德 이직보원 이덕보덕

或曰 以德報怨何如 

子曰 何以報德 以直報怨 以德報德

 

공자는 묻는다 報怨以德 (원한을 은덕으로 갚음)한다면 내가 상대방으로부터 원망이 아니라 덕을 입었다면 무엇으로 그 덕을 갚을 것인가?’ 그리고 공자는 ‘以直報怨 以德報德하라고 권장한다.

원망은 그 마음이 생겨난 원인을 풀어내야 없어지는 것이기에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짚고 따져서 죄줄 것은 죄주고 용서할 것은 용서해야 원망이 풀어지기 때문이다. 

‘以直報怨’은 ‘겨울의 얼음이 풀린 뒤 천둥치고 비가 내려야 백과초목이 모두 싹트는(天地解而雷雨作, 雷雨 作而百果草木 皆甲坼)’ 이치에 비유할 수 있다. (만물이 풀린다는 주역 뇌수해(解)괘)

공자는 우레와 비가 해갈을 가져오듯이, 위정자는 사회통합 차원에서 죄인의 허물을 용서해 주고 죄를 감해주어(象曰雷雨作解, 君子以赦過宥罪) 백성의 원망을 풀어주도록 하라고 권장한다.

 

맹자도 같은 생각이다. 孟子 告子장구 하편 3장에서 말한다.

아무 잘못도 없이 계모의 참소로 집에서 쫓겨난 자식이 부모를 원망하는 것이 당연하다며 부모의 허물이 큰 데도 원망하지 않으면 이것은 오히려 부모와 소원해지는 일로써 불효가 된다(小弁 親之過 大者也, 親之過 大而不怨, 是 愈疎也, 愈疏 不孝也)’고 하였다. 

 

報怨以德 (원한을 은덕으로 갚음)은 老子 道德經 第六十三章에 나온다.

爲無爲, 事無事, 味無味, 위무위, 사무사, 미무미, 

大小多少, 報怨以德. 대소다소, 보원이덕.

Lao Zi는 이를 영어로 번역하면서 德으로 갚으라고 직역하고 만다. (The Project Gutenberg EBook of Dao De Jing, by Lao Zi)

Act with non-action. Handle duties with non-interference. Taste that which is without-flavor.

Greatness is insignificant, too much is less. Repay animosity with De.

 

道德經 第六十三章은 爲無爲, 事無事로 시작한다. 이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하여 무위無爲를 강조하는 일종의 처세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어서 나오는 大小多少, 報怨以德는 큰 것은 작게 여기고 많은 것은 적게 여기며, 원한은 덕으로 갚는라고 말하는데 이 구절에 대하여 다양한 해석들이 있다. 

중국 고대 한 시대 학자 왕필은 이 문장을 아래와 같이 풀이한다.

"작은 원한은 보복할 것이 없고, 큰 원한은 천하가 모두 죽임으로 보복하고 싶어 한다. 

천하가 모두 원하는 것을 따르는 것이 덕이다"라고 하였다. 

보복할 것이 없는 작은 원한은 보복하지 않기 때문에 덕이고, 큰 원한에 대한 보복은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덕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하면 큰 원한이나 작은 원한이나 모두 덕으로 갚게 된다. 

현종어주본도 "만약 사물을 좇아서 사심을 만들어내고, 분수에 어긋나게 행동하면서 본성을 해친다면 큰 것이나 작은 것을 막론하고 모두 원망을 짓게 된다"고 하였다. 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2003. 6. 30., 김홍경)

 

莊子는 장자 내편 소요유(逍遙遊)에서 ​지인(至人)을 언급한다. 인간으로서 지극한 경지,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으로 은원(恩怨)이 없으며, 보복과 길흉은 하늘에 맡긴다. 

"지인(至人)은 은원(恩怨)이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보복과 길흉은 하늘에 맡기고 그저 앉아 관망할 뿐이다. 홀로 마음 내키는 대로 하다가는 스스로 망하게 될 것이니, 제재할 수 있다 하더라도 굳이 내 손을 쓸 것이 있겠는가?"

 

莊子 內篇 1 逍遙遊(소요유) 1-5 無己 無功 無名(무기 무공 무명)

故夫知效一官,行比一鄉,德合一君,而徵一國者,其自視也亦若此矣。

而宋榮子猶然笑之。且舉世而譽之而不加勸,舉世而非之而不加沮,

定乎內外之分,辯乎榮辱之竟,斯已矣;

彼其於世,未數數然也。雖然,猶有未樹也。

夫列子御風而行,冷然善也,旬有五日而後反;

彼於致福者,未數數然也。此雖免乎行,猶有所待者也。

若夫乘天地之正,而御六氣之辯,以遊無窮者,彼且惡乎待哉!

故曰:至人無己,神人無功,聖人無名

故曰:지인무기(至人無己) 신인무공(信人無功 성인무명(聖人無名)

지인(至人)은 인간으로서 지극한 경지에 도달한 사람이요, 신인(神人)은 신과 같은 아무 것도 걸리지 않는 경지에 이른 사람이요 성인(聖人)은 존재와 명예를 초월한 자이니라

지인무기(至人無己)라 무기(無己)는 자기己를 버렸으니 사심(私心)이나 이기심(利己心) 그리고 사리사욕(私利私慾)에서 떠남으로써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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