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역동적 자본주의의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이자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형태의 사회주의 국가 / 슬라보이 지제크

2022. 1. 3. 23:47경제

슬라보이 지제크 공산주의는 권위주의적 자본주의이다

슬라보이 지제크 |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경희대 ES 교수

 



 

 

 7월1일, 중국 공산당은 창당 100년을 맞았다. 

그동안 수많은 빈곤 계층을 중산 계층으로 끌어올리며,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성공이라 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20세기 좌파는 자본주의와 권위주의에 저항했다. 

반대로 중국은 이 둘을 극단적인 형태로 결합하여, 역동적 자본주의의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이자 가장 효과적으로 작동하는 형태의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지금 중국에서 누군가가 고전적인 공산주의 사상에 따라 노동자들을 조직하여 국가 권력의 착취에 맞서고자 시도한다면, 그는 곧바로 체포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이 하는 중요한 역할 하나는 자본에 대한 저항이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끈 덩샤오핑은 죽기 전 가장 큰 업적이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질문자가 기대한 답은 개혁개방 정책이었으나 덩의 대답은 딴판이었다. 

“공산당 지도부가 경제를 개방하기로 결정했을 때, 

정치까지 함께 개방하여 다당제 민주주의를 도입하자는 당 일각의 주장을 단호하게 거부한 것일세.”

 

여기서 우리는 중국이 그때 ‘정치적’ 민주주의를 도입했더라면, 중국의 ‘경제적’ 발전도 더 빠르게 이루어졌을 것이라는 자유주의적인 가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근대 초기 부르주아 계급은 경제적 권력을 취하고자 하면서도, 정치적 권력은 계속 귀족 계급에게 맡겨두고자 했다. 이와 유사하게, 중국의 자본가들은 정치적 권력을 공산당에 맡겨두길 원한다. 공산당이야말로 자본의 이익을 가장 잘 보호해주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문화대혁명 이후 자본주의를 도입한 역사를 보면, 중국이 극에서 다른 극으로 변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브레히트가 “은행을 세우는 것에 비하면 은행을 터는 것이 무슨 대수인가?”라고 물었듯이, 문화대혁명과 자본주의 사이에는 구조적 유사성이 존재한다. 마오쩌둥이 기존 사회의 기본 구조를 파괴했던 일이 곧 중국이 자본주의로 빠르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 이데올로기적 조건이 되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는 사회가 교착상태에 다다를 때마다 그것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자 방법으로, 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동력으로 반복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오늘날 자본주의는, 기존의 복지국가를 보호하는 데만 몰두하는 전통적 좌파보다 훨씬 더 혁명적이다. 지난 10년 동안 자본주의가 우리 사회의 전체적인 결을 얼마나 많이 변화시켰는지 생각해보라.

 

1920년대 부분적으로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허용했던 레닌의 ‘신경제정책’(NEP)을 모델로 삼아, 덩샤오핑이 자본주의적 자유시장경제를 공산당이 통제하는 방식의 정책을 설계했음은 분명해 보인다. 신경제정책이나 중국식 사회주의를 그저 사회주의의 실패로 비웃고, 중국이 자본주의로 이행하고 있다고 보면 그만인 걸까? 정반대로, 자본주의 그 자체를, 봉건주의 또는 전근대 사회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의 과도기적 단계로 정의해본다면 어떨까?

 

자본주의 근대는 전근대에 있었던 인간 사이의 직접적 지배종속 관계를 철폐하고 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사회주의적 측면을 지닌다. 독일 농민전쟁이나 자코뱅 운동 등 근대 수많은 봉기들이 경제적 평등을 지향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당연하다. 자본주의는 전근대에서 사회주의로 이행하는 중간 과정이지만, 그것이 절충된 상태다.

 

즉 자본주의는 인간 사이의 직접적인 지배 관계의 철폐를 받아들이지만, 그 지배의 차원을 사물 사이의 지배로 이동시킨다. 개인으로서 우리는 모두 자유지만, 우리가 시장에서 교환하는 상품 사이의 관계에서는 지배가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이제 거대한 질문이 남는다. 시장의 자유를 폐지하면서 정치적 자유를 폐지하지 않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확실한 것은, 정치적 자유를 폐지하면서도 시장의 자유를 폐지하지 않는 것은 가능하다는 점이다. 중국이 보여주었다.

 

중국 공산당의 이 승리는 권위주의적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형태가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대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제 좌파는 현재의 중국을 진정으로 민주주의적인 해방의 가장 큰 적으로 여기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번역 김박수연

원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03999.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