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9. 21. 20:12ㆍ시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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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오기까지는 / 문병란
새벽이 오기까지는
아직 우리들은 어둠에 익숙해야 한다
어둠에 스며들어 어둠의 일부가 되고
어둠과 속삭이며 오히려 어둠을 사랑하며
속속들이 어둠의 은밀한 가슴을
열렬히 두 팔로 끌어안을 줄 알아야 한다
새벽이 오기 까지는
아직 머언 한밤중,
아직 우리들은 깊은 잠에 빠져서는 안 된다
피투성이 내일을 끌어안기 위하여선
한 톨의 불씨가 되어 묻혀있어야 하고
이 기나긴 공방
비록 신랑이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잿빛 창가에 기대어 서서
먼별의 약속을 믿으며
한 알의 꽃씨를 깊이 간직할 줄 알아야 한다
역사는 언제나 밤에 이루어지는 것
절망은 또 하나의 희망, 그것을 끌어안고
그것을 입 맞추며, 우리는 속속들이
어둠에 녹아들 줄 알아야 한다
피 젖은 어둠의 육신을 사랑 할 줄 알아야 한다
보라, 지금은 깊은 밤
모든 빛이 사라지고 온 누리 캄캄할 때
두 손을 모우는 자리에서
비로소 만나는 임의 모습,
처절한 절망의 법도가 오히려 엄숙하다!
그리하여 새벽이 오기까지는
더 기다리고 있어야 할 가나긴 忍苦,
보다 더 열렬히 사랑하기 위하여
보다 더 뜨겁게 입 맞추기 위하여
아직은 더욱 절망을 사랑해야 한다
한 톨의 불씨를 안고 스스로 어둠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한 마리의 불나비는
온몸 불사루어 황홀한 향연!
차라리 어둠을 입 맞추며
한 줄기 불꽃 속에 타버리며
거대한 절벽을 부둥켜안고
온몸으로 사랑하는 절망을 배운다.
온 누리 밝음 죄다 삼켜버리고
천근의 무게로 쩌 누르는 어둠 속에서
한 톨의 불씨로 타오르는 사랑이여
오 한꺼번에 살아버릴 뜨거운 가슴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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