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육체(肉體) / 문병란
가을과 육체(肉體) - 문병란 모든 것들이 떨어지는 가을날 낙엽이 지는 것을 바라보면 질 것이 없는 내 마음 슬프다. 아름답지 않은 비듬,머리카락 낙엽처럼 곱게 물들지 않은 까칠한 파부 홀쭉한 두 뺨을 바라보며 떨어질 것이 없는 내 마음 슬프다 땀, 오줌, 온갖 배설물 향기롭지 않은 육신을 가지고 가을날 질 것이 없는 어께죽지 무거워지면 수그린 이마에서 죽음의 소리가 들린다 내 사랑도 그리움도 낙엽처럼 곱게 질 수 없을까 썩은 꽃자리에 열매처럼 향기롭게 익을 수 없을까 여름이 빠져 나가버린 나의 육체 질 것이 없는 앙상한 내 이마 위엔 주름살만 사납게 금 그어진다 애증이 머물다 긴 잿빛 가슴에 질 것이 없는 나의 가을 수척한 어깨 위에 고운 낙일이 정답게 두 손을 얹은다
2021.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