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필연성을 바라보는 시각들

2021. 9. 29. 20:24시 사진

 

네덜란드의 철학자 스피노자(Spinoza)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감정적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 일들로부터 더 이상 가슴을 졸이지 않아도 된다.

실망할 필요도 없다. 

다른 결과는 처음부터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다른 선택이 처음부터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슬퍼할 이유가 사라져버린다고 스피노자는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죽음의 ‘필연성’을 이해하고 이를 내면화할 수 있다면, 우리는 죽음을 덜 부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도스토옙스키(Dostoyevsky)의 단편소설 《지하생활자의 수기(Notes from Underground)》에서 지하생활자는 ‘2×2=4’라는 사실에 기분이 나쁘다.

‘2×2=4’라는 사실에 대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리고 이를 절대 바꿀 수 없다는 사실에 분노를 느낀다. 

 

데카르트는 신의 전지전능함에 대해 이야기하며 신이 수학적 사실을 바꿀 수 없다면 그건 전지전능한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바꿀 수 없는 필연성에 갇혀버린 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징후로 여겼다. 

여기서 데카르트는 신은 ‘2+2=5’라고 얼마든지 바꿀 수 있지만,

다만 그렇게 하지 않기로 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도스토옙스키는 데카르트의 그런 지적을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뤘다. 

지하생활자는 뭔가가 필연적이라고 해서 그게 어떤 위안이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상황을 더 나쁘게 만들 뿐이다. 

두 가지 관점 모두 수긍이 간다. 사실 상황에 따라 왔다 갔다 한다.

 

 

미스 USA 대회의 한 참가자가 남긴 지혜의 말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 싶다. 

“영원히 살고 싶으신가요?”라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영원히 살지는 않을 거예요. 그럴 수 없기 때문이죠. 만약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것을 택할 테죠. 

하지만 그럴 수 없기 때문에 비로소 우리는 죽을 수 있는 거예요."

멋진 대답 아닌가?

 

DEATH / 셸리 케이건(SHELLY KAGAN)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