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과 육체(肉體) / 문병란

2021. 10. 5. 17:52시 사진

 

 

 

가을과 육체(肉體) - 문병란

 

 

 

모든 것들이 떨어지는

가을날

낙엽이 지는 것을 바라보면

질 것이 없는 내 마음 슬프다.

 

아름답지 않은 비듬,머리카락

낙엽처럼 곱게 물들지 않은

까칠한 파부

홀쭉한 두 뺨을 바라보며

떨어질 것이 없는 내 마음 슬프다

 

땀, 오줌, 온갖 배설물

향기롭지 않은 육신을 가지고

가을날

질 것이 없는 어께죽지 무거워지면

수그린 이마에서 죽음의 소리가 들린다

 

내 사랑도 그리움도

낙엽처럼 곱게 질 수 없을까

썩은 꽃자리에

열매처럼 향기롭게 익을 수 없을까

 

여름이 빠져 나가버린 나의 육체

질 것이 없는

앙상한 내 이마 위엔

주름살만 사납게 금 그어진다

 

애증이 머물다 긴 잿빛 가슴에

질 것이 없는 나의 가을

수척한 어깨 위에

고운 낙일이 정답게 두 손을 얹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