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랑 바르트의 <신화론> 신화 학자의 임무

2022. 6. 17. 14:01고전 읽기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 신화 학자의 임무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은  고대 신화의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의 신화이며 그 주인공들은 인간들이다.

서구에서 근대화 과정에서 인본주의는 신이 차지하고 있던 전지전능한 자리를 탈취하고자 ‘이성(理性)’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였다. 신의 자리를 탈취한 인간은 그 권능을 행사하려는 유혹에 빠진다. 그 권능의 행사에 앞장선 것이  ‘부르주아’라고 계층들이었다. 그들은 ‘이성’에 ‘자본’이라는 막강한 화력을 더함으로써 근대의 신으로 군림하여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유지ㆍ강화ㆍ확대하는 담론들을 생산하여 유포시키기 시작했다. 그러한 담론들 중, 수 세기를 거치면서 현재까지 살아남은 것들은 현대의 신화가 되었다. 

 

 

바르트가 주목하고 있는 신화란 바로 이러한 부르주아의 신화인 것이다.

바르트가 <신화론>에서 다루고 있는 이러한 현대의 신화들은 몇 가지 속성을 지니고 있다.

우선 신화는 사회적으로 결정된 것, 다시 말해서 사회에 의해 ‘반영’된 것이다. 

지극히 당연하고 자명한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들도 그 배후에는 그 신화가 유통되고 있는 사회의 선택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신화는 자연적이 아니라 역사적인 것이다.

 

현대는 ‘전도된 것’이다. 신화는 문화를 자연으로, 다시 말하면 사회적인 것, 문화적인 것, 이데올로기적인 것, 역사적인 것 등을 ‘자연적인 것’으로 뒤집어놓는다. 

구체적이고 특수한 것을 보편적이고 일반적으로 만들면 신화는 ‘양식(良識)’, ‘규범’, ‘일반적인 여론’으로 받아들여지게 된다.

 

현대의 신화는 둔갑술에 능한 마법사처럼 새로운 환경에 맞추어 발 빠르게 옷을 갈아입는다. 

활판 인쇄에서 전자 매체로 미디어 환경이 바뀌면 그에 따라 새로운 신화들이 등장한다.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 신화들이 불연속적으로 변화하지만 그 이전의 신화들이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고 살아남는다.

 

 

현대의 신화는 일종의 빠롤이다. 신화는 의사소통의 체계로서 하나의 전언(message)이다. 

그리하여 신화는 기호학의 대상이 된다.  

<신화론>의  상당 부분이 형식, 개념, 기호와 의미작용 등 소쉬르의 기호학을 원용해서 해석된다.

신화의 구조와 체계와 특성을 분석하는 데 소쉬르의 기호학이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다.

 

바르트에 따르면, 신화는 그 구조에 있어서는 이차적인 기호학적 체계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의미작용에 있어서는 이중성을 띠고 있다. 

즉 신화는 대상언어 위에 덧씌워진 메타언어로 이루어져 있고, 표면적인 의미 안에 의도를 숨기고 있다.

 

신화학자의 임무란, 신화의 표면적인 의미 밑에 숨겨진 이 의도를 폭로하는 것이고,

신화의 의도와 이중 구조를 밝히 읽어내면  신화는 빛을 잃게 된다. 즉 ‘탈 신화화’가 된다. 

 

그러한 ‘탈 신화화’를 위하여 신화학자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방법이 있다.

 

1. 신화를 해독하는 학자는 과학자의 객관성과 시인의 주관성,  이 둘 중에 하나만을 선택할 수 있다. 

과학자의 객관성을 선택하여 신화가 감추고 있는 이데올로기를 속속들이 드러낼 때, 신화는 파괴되고 만다. 

신화가 파괴되면 신화학자가 설자리는 더 이상 없다. 

 

2. 반면에 시인의 주관성을 선택하여 신화를 순수하게 사물화하여 보게 되면 (바르트는 시라는 것을 매우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물들의 환원될 수 없는 고유한 의미에 대한 탐구라고 이해한다), 신화는 또다시 신화화된다. 

그렇게 되면 신화학자는 탈 신화화에 기여하기보다는 오히려 신화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바르트는 과학자의 객관성과 작가(시인)의 주관성 사이에 자연적인 분리를 가정하는 위의 전통적인 믿음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가 추구하는 것 현실과 인간을, 묘사와 설명을, 대상과 지식을 화해시키는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제2부에 실린 30개의 신화들은 바로 그의 그러한 노력의 결정체들로서, 

1954년부터 1956년까지, 프랑스의 일상적 삶에서 채취한 신화들을 해석해낸 것이다. 

그 신화들의 목록은 레슬링에서 스트립쇼에 이르기까지, 영화 속의 로마인들에서 휴가 중인 작가들에 이르기까지, 가르보의 얼굴에서 아인슈타인의 두뇌에 이르기까지, 현실을 모방하는 장난감에서 인간을 모방하는 신형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신화의 사례 1   가루비누와 합성세제가 그 이전의 액체비누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신화의 진화 사례. 

액체비누는 더러움을 완전히 ‘박멸’한다. 이에 반해 가루비누는 더러움을 옷감의 씨줄을 따라 몰고 가  ‘추방’한다. 

그리하여 가루비누는 전쟁이 아니라 경찰의 기능을 수행한다. 

한편, 합성세제는 깊이와 거품이라는 두 가지 속성을 활용해서 소비자를 심리적으로 사로잡는다. 

깊숙하게 때를 빼준다는 광고 멘트는, 얇은 옷감이 깊이를 지니고 있으며 그래서 껴안고 어루만지고자 하는 인간의 은밀한 본능에 호소한다. 풍부한 거품을 쉽게 만들어낸다는 광고 멘트는 욕조 안의 인기 배우처럼 행복한 느낌을 우리에게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거품이 합성세제가 지닌 거친 기능을 감미로운 이미지로 위장할 수 있다는 점을 바르트는 지적한다.

 

신화의 사례 2

전통적인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본질적으로 양육과 가사에 남성보다 더 적합하다는 신화는 신문이나 잡지 같은 대중매체를 통해, 혹은 텔레비전의 상품 광고를 통해 대중매체의 수용자들에게 무수히 주입된다. 

아침 드라마에서 여성은 주부로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남성은 남편으로서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는 장면이 아주 자연스럽게 목격된다. 

또한 아기 분유 광고에서 주연은 늘 주부인 여성으로 고정화되어 있고, 드물게 남편으로서 남성이 함께 광고에 출연하는 경우에도 남편은 조연으로 다만 화목한 가정이라는 이미지를 부가하곤 한다. 

이 같은 장면은 대중매체에서 너무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 결과, 남성은 '자연스럽게' 한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게 되며, 

여성의 자연적인 역할은 가정에서 자녀를 키우고 보살피는 것으로 굳어진다. 

존 피스크(John Fiske, 1990)는 이와 같이 신화란 그 의미를 자연의 일부로 제시함으로써 자신의 역사적 기원을 위장하고 스스로를 보편화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신화의 의미를 불변하며 공정한 것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남성과 여성의 예에서 드러나는 것처럼 사회관계에서 생기는 정치적 효과를 은폐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롤랑 바르트의 <신화론>은 현대 사회의 일상적 삶에서 발견되는 사소한 사물들과 현상들 안에 깃들어 있는 신화들의 숨겨진 이데올로기를, 그 감춰진 의도를 과학자의 객관성과 작가(시인)의 주관성을 잘 결합하여 읽기에 즐겁게 보여준다. 

 

바르트의 <신화론>에서 다루고 있는 사례들이  50년 전 프랑스에 국한되어 있는 신화들이지만 

그가 알려주는  ‘신화적인 것’들은 신화의 모습이 바뀌었어도 여러 모습으로 살아있음을 발견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