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2. 5. 16:52ㆍ고전 읽기
“하늘이 나에게 중대한 임무를 내려 주시기 전에 먼저 반드시 나의 마음과 뜻을 괴롭게 하고,
나의 뼈와 근육을 힘들게 하며, 나의 몸과 살을 주리게 하고,
나의 몸을 궁핍하게 하여 하고자 하는 일을 어렵고 힘들게 만들어서
나의 마음과 본성을 단련시켜 내가 하지 못했던 역량들을 더욱 증진시켜 준다.
[故天將降大任於是人也(고천장강대임어시인야), 必先苦其心志(필선고기심지),
勞其筋骨(노기근골), 餓其體膚(아기체부), 空乏其身(공핍기신), 行拂亂其所爲(행불란기소위),
所以動心忍性(소이동심인성), 曾益其所不能(증익기소불능)].”
- 『孟子』 告子下•15
O 곤괘(困卦) - 곤경에 처한 공자
공자도 곤경을 겪은 적이 있었다.
그렇다면 공자는 자신이 겪은 곤경으로부터 무엇을 깨달았을까?
공자가 겪은 이 곤경에 관한 기록은 여러 저작에 다른 버전으로 나타난다.
그 가운데 유향이 지은 『설원 說苑』에 기록된 것을 보자.
공자가 진(陳)•채(蔡)의 국경 근처에서 곤경에 빠져 양식마저 떨어지고 제자들이 배를 곯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도 공자는 두 기둥 사이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에 자로(子路)가 불평을 털어놓았다.
"선생님께서는 지금 이 지경에서도 노래를 부르시니 그것도 예입니까?"
공자는 대답하지 않고 노래를 다 마친 다음에 말했다.
"유(由)야! 군자가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교만[驕]을 없애기 위함이며, 소인이 음악을 좋아하는 것은 두려움을 없애기 위함이다.
누가 이런 깊은 뜻을 알겠는가? 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서 나를 따라다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며칠이 지난 후 그 곤경으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 자공(子貢)이 수레 고삐를 잡고 수레를 몰면서 말했다.
"친구들이여! 선생님을 따르다가 이러한 어려움에 빠졌으니 어찌 이 일을 잊을 수 있겠는가!"
그러자 공자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옛말에 '팔을 세 번 꺾어 보아야 좋은 의사[良醫(양의)]가 될 수 있다.'고 이르지 않았더냐.
이 진채지간(陳蔡之間)의 일은 나에게 불행이 아니라 오히려 큰 다행이었다.
그렇다면 너희들도 나를 따랐으니 모두 행복한 사람들이다.
내가 듣기로 군주가 된 자가 곤경에 처해 보지 않으면 왕도를 이룰 수 없고 뜻을 가진 선비가 곤경을 겪어 보지 않으면 그의 뜻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
따라서 곤경이 도(道)를 낳는 일은 찬 것이 따뜻한 것을 낳고 따뜻한 것이 찬 것을 낳게 하는 이치와 같다.
오직 지혜로운 자만이 이를 알 뿐이며, 쉽사리 말로 표현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역(易)에서 '곤경은 형통할 수 있다. 곧은 신념과 올바름을 지키고 대인(大人)이라면 길하고 허물이 없다.
그러나 쓸데없이 불평불만과 변명의 언사를 늘어놓는다면 신뢰가 떨어질 뿐이다
[易曰, 困, 亨, 貞, 大人, 吉, 無咎. 有言不信(역왈, 곤, 형, 정, 대인, 길, 무구. 유언부신)].'라고 했으니,
바로 성인이 타인에게 말해 주고 싶어도 말해 주기가 어려운 삶의 이치이니, 정말 맞는 말이다."
공자가 말한 '쉽사리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점'은 무엇이었으며 '성인이 타인에게 말해 주고 싶어도 말해 주기 어려운 것'이란 또 무엇이었을까?
차마 말하지 못할 어떤 속내가 있었던 것일까?
공자는 그 어려운 지경에 왜 거문고를 켜면서 노래를 불렀던 것일까?
공자는 혹시나 운명의 잔혹함에 비애를 느꼈던 걸까? 혹 자기 마음속 깊은 곳에 똬리를 틀고 있다가 결국 자신을 곤경에 빠뜨린 자신의 오만과, 곤경에 처해서 떠는 자신의 두려움이라는 미세하지만 작은 마음의 돌부리를 들여다본 것은 아닐까?
혹시나 천하를 위한 자신의 뜻과 노력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하여, 자신의 뜻을 실천한 결과로 기껏 곤경에 처하게 된 자신의 처지에 대하여 분노하고 원망하지는 않았을까? 그래서 거문고를 끼고 앉아 마음을 달랬던 것은 아닐까? 의문투성이이다.
곤경을 상징하는 곤괘
만감이 교차하는 순간 공자는 거문고를 들고서 노래를 불렀다. 그때 공자의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다. 모를 일이다. 그 복잡하게 요동하는 인간의 마음이란 정말 모를 일이다. 곤경에 처해본 자,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공자는 그 곤경을 불행이 아닌 다행[幸]으로 여기고 있으며, 그 일을 계기로 새롭게 그의 역정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그리고 『주역』의 한 구절로 그 상황을 빗대고 있다. 공자가 다행으로 여긴 것은 무엇일까?
그가 언급한 『주역』의 곤괘(困卦) 한 구절은 무슨 의미일까?
곤괘는 『주역』의 47번째 괘이다. 택수곤(澤水困)이라고 한다. 연못을 상징하는 태괘(兌☱)가 위[外卦]에, 물을 상징하는 감괘(坎☵)가 아래[內卦]에 놓여 이루어진 괘(兌☱上 坎☵下)이다. 상징적으로 태괘가 상징하는 연못 아래에 감괘가 상징하는 물이 놓여 있는 이미지이니 연못에 물이 빠져 메마른 상태이다. 곤란한 일이다. 이 곤경을 상징하는 괘가 곤괘이다. 곤괘의 괘사(卦辭)는 이러하다.
“곤경에 처했지만 형통할 수 있는 가능성은 많다.
올바르고 곧은 뜻을 굳게 지켜 나가야 하지만 편협해서는 안 되니, 포용력 있는 대인의 도량을 발휘해야 길하고 허물이 없을 수 있다. 불평불만과 변명을 일삼는다면 신뢰가 떨어져 일을 그르친다
[困, 亨, 貞, 大人, 吉, 无咎. 有言不信(곤, 형, 정, 대인, 길, 무구. 유언부신)].”
지극히 간단하며 풍부한 내용을 함축한 말이다. 그러나 쉽게 현실적인 느낌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문제는 상상력이다. 간단한 말에 삶의 무궁한 이야기들이 잠재해 있다. 곤경에 처해 본 일이 있는 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를 일이다.
'곤경에 처하면 형통하다[困, 亨]'라는 괘사에 대해서 왕필의 해석은 낙관적이다.
곤경에 처한 사람은 반드시 형통하다고 하면서 형통할 수 없는 사람은 군자가 아니라 소인일 뿐이라고 한다.
과연 그럴까? 정말 '반드시' 형통할 수는 있는 것일까? 혹은 군자라면 반드시 형통할 수가 있는 것인가?
세상일에 반드시 라고 기필할 수 있는 일은 얼마나 될까? 왕필은 세상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본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너무 어려서 인생의 쓴맛을 알기에는 세월의 두께가 너무 얇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왕필은 또한 곤경에 빠졌을 때 '모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양만리는 이러한 왕필의 견해에 반박하고 있다.
단순히 왕필의 말만 믿고서 자신이 처한 어려운 환경에 안주하여 거친 음식을 맛나다고 하거나 누추한 곳을 즐겁고 편하다고 여긴다면 이것은 아큐의 정신적 승리로서의 자기 기만일 수 있다.
자신을 군자라고 착각하는 자기 합리화의 오만을 양만리는 지적한다.
그것은 자기 합리화에 의한 자기 위안일 수 있으며, 또한 자기 기만일 뿐이다.
그렇다고 단지 그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략하는 것은 비굴한 일이다.
그래서 양만리가 지적하는 것은 바로 마음의 문제이다.
형통한 것은 곤경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형통한 것이 아니라, 고난의 상황에서 몸이 힘들어도 마음은 기쁨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형통한 것이다.
그러한 기쁨은 어떻게 가능한가?
올바른 뜻을 굳게 지키고 있기[貞]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자기 고집의 절개는 자신의 곤란한 현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무관심과 편협함은 아니다. 현실과 적절하게 관계하는 균형 감각이다.
곤(困)괘 괘사에서 "올바르고 곧은 뜻을 굳게 지켜 나가야 하지만 편협해서는 안 되니, 포용력 있는 대인의 도량을 발휘해야 길하고 허물이 없을 수 있다[貞, 大人, 吉, 無咎]."고 했다.
이 부분에 대해 단사(彖辭)는 "정대인길, 이강중(貞大人吉, 以剛中)"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말하는 강중(剛中)이 바로 자신의 뜻을 굳게 실천하면서도 편협하지 않고 현실과 적절하게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대인(大人)의 균형 감각을 말한다.
"주역의 괘효에 나타난 이야기"에서
'고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늘 위에 하늘 있다 强中更有强中手, 惡人自有惡人磨 증광현문(增廣賢文) 351 (0) | 2021.12.06 |
---|---|
세월은 쏜살 같고 증광현문(增廣賢文) 346~350 光陰似箭, 日月如梭 (0) | 2021.12.06 |
증광현문(增廣賢文) 1~10 昔時賢文, 誨汝諄諄, 석시현문, 회여순순 (0) | 2021.12.03 |
靑春不再來 청춘은 다시 오지 않는다. 增廣賢文 271~3 (0) | 2021.09.12 |
정조 탕평비蕩平碑 "周而弗比 乃君子之公心" 두루 원만하고 편향되지 않음이 군자의 마음이다 (0) | 2021.0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