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 그리스도교 신앙과 과학적 탐구의 조화로운 통합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2021. 10. 5. 20:17고전 읽기/성경 기독교 고전

그리스도교 신앙과 과학적 탐구의 조화로운 통합 제시 /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20세기를 빛낸 가톨릭 신학자들]<28>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

 

 

과학과 종교, 혹은 과학과 신앙의 관계는 과연 무엇인가.

이는 본격적인 세속화와 더불어 과학기술의 발달이 이뤄지기 시작한 근대부터 본격적으로 제기된 질문이다.

하지만 이는 현대에 이르러 더욱 심각하게 다가오는 중요한 문제다.

 

오늘날의 종교들, 특히 그리스도교는 '과학주의'라는 광대한 흐름의 도전과 위협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 현대의 극단적인 과학적 세계관은 무신론적 성격을 분명히 드러내며 그리스도교 신앙관과 가치관에 맞서고 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자신의 개인적 삶의 여정 안에서 과학적 탐구와 그리스도교 신앙의 조화로운 통합을 시도하고,

여러 저서를 통해 우주적 관점의 보편적 그리스도론을 전개한 프랑스의 예수회원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Pierre Teilhard de Chardin, 1881~1955) 신부의 신학사상을 살펴보는 것은 현대의 과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게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샤르댕은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 개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과학과 신학의 통합을 시도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우주의 알파요 오메가로서 우주적 발전과 진화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으로 제시한다. CNS

 

현대 과학주의의 무신론적 도전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앙에 큰 도전과 위협으로 다가오는 과학주의는 그야말로 과학기술의 놀라운 힘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과학기술지상주의' 혹은 '과학기술만능주의' 관점에서 먼저 이해할 수 있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급속한 발전을 거듭하는 현대 과학기술 문명 속에서 인간은 한편으론 매우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론 과학기술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져서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마치 그 노예가 된 것 같은 삶을 살아간다. 더욱이 과학기술의 힘이 그 전통적 한계를 넘어서 인간의 모든 삶을 통제하고 지배할 것 같은 착각과 환상에 빠지게 된다.

 

 이는 마치 하느님 영역에 도전해 과학기술의 힘으로 바벨탑을 쌓는 시도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창세기 111-9절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에서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는 목적과 동기는 바로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대의 우주론적 세계관에서 하늘은 곧 신의 영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결국 이는 자신이 하느님의 자리에까지 오르고자 하는 인간의 독선과 교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렇듯 인간의 본분을 잊고 있어야 할 자리를 넘어 하느님의 권능에까지 침범하려 도전하는 오만함이야말로 오늘날 극단적인 과학주의 흐름이 보여주는 뚜렷한 경향이다.

 

 이러한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에서 바라볼 때 그리스도교 가치관과 인간관 및 세계관은 그 관심에서 철저히 배제되며 전통적인 형이상학적, 윤리적 가치관 또한 도외시된다. 과학기술의 힘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제 그것이 자연과 인간에 대해 거의 신적인 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이상 하늘을 바라보거나 초월적 차원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없게끔 만든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과학기술의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간의 종교적 믿음에 관한 가치가 근본적으로 의문시되기에 이른다.

 

 나아가 과학기술만능주의 관점에서 매우 명시적이고 공격적인 현대 무신론이 등장한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무신론 저서 만들어진 신(The God Delusion, 2006)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 등 여러 과학적 무신론자들은 인간의 이성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진리의 근거와 기준은 오직 현대의 자연과학적 방법론뿐이기에 모든 종교적 믿음은 근거 없는 미신과 맹신에 불과한 것이라고 간주한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첫 회칙 신앙의 빛을 통해 "과학으로 제작하고 측량할 수 있는 것만이 진리로 여겨지는"(25) 오늘날의 과학주의 경향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과학적 무신론자들이 신봉하는 찰스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은 이제 인간의 모든 정신적 사회 현상까지도 설명 가능한 우주적 보편 원리로 등장한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생물학 교수인 에드워드 윌슨은 이러한 진화론적 관점에서의 사회생물학을 주창했고, 바로 이것이 리처드 도킨스 등에게 영향을 미쳐 보다 급진적인 과학적 무신론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스티븐 호킹 등의 세계적 이론 물리학자들 역시 우주의 자체적 생성을 주장하며 명시적인 무신론을 내세우게 됐다.

 

 과학과 신학의 대화 필요성

 이러한 과학적 무신론자들의 급진적 주장 앞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해 과연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과학적 탐구는 반드시 무신론적 경향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 과연 그들은 생물학적 결정론이나 환원주의에 근거한 무신론적 과학주의 입장에서 무한히 광대한 우주와 심오한 인간 생명의 신비를 모두 충분하게 설명할 수 있다고 정말 믿는 것인가. 사실상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신앙이다. 가장 논리적인 서렴이라고 주장한다)

 

 특히 인간 영혼의 신비는 인간 이성에 의해 어느 정도 탐구될 수는 있지만 온전히 파악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인간 영혼의 문제는 여전히 이성의 한계를 넘어서는 초월적 영역에 속하기에 과학적 실증주의 입장으로 파악하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는 것이고,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과학과 신학의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현대 교회의 가르침은 하느님 권능에 의한 세상과 인간의 창조를 가르치면서도 진화론을 전적으로 배척하지 않는다. 과학과 신학의 책임 있는 대화를 통해 이에 관한 연구가 진지하게 지속되기를 권고하면서도 인간 영혼에 관한 영역은 반드시 존중돼야 함을 강조한다.

 

 과학과 신학은 상호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적 비판에 입각한 상호 대화를 통해 함께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 둘은 우주의 기원과 인간 생명의 신비에 대한 진리 탐구적 열망의 동일한 원천에서 비롯해, 각자 고유한 길에서 위대한 근원적 신비를 향한 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긍정적 관점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과학적 견해를 무시하고 간과하는 신학자의 맹목적 입장도 큰 문제지만, 신학적 전망과 가치를 배격하고 무조건 앞으로만 달려가려는 과학적 세계관의 독주 역시 매우 위험하다.

 

 그러므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신앙의 빛을 통해서 과학의 한계를 조정하고 보완하는 신앙 역할을 강조한다. "과학의 시각은 신앙으로부터 도움을 받습니다. 신앙은 과학자들이 실재의 고갈될 수 없는 모든 부() 안에서 실재에 늘 열려 있도록 격려합니다. 신앙은 과학적 연구가 몇 가지 공식으로 만족하는 것을 막음으로써 비판적인 감각을 일깨워주고, 자연이 언제나 더욱더 큰 실재임을 깨닫게 해 줍니다. 창조의 신비 앞에서 경이감을 갖게 함으로써 신앙은 이성의 지평을 더욱 넓혀 줍니다. 이는 과학적 탐구에 개방되어 있는 세상에 더 큰 빛을 비추기 위함입니다"(34).

 

샤르댕의 생애와 공헌

 이러한 '과학과 신학의 관계'라는 주제를 다룸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그는 바로 지질학자이자 고생물학자이면서 동시에 신학자였던 피에르 테이야르 드 샤르댕이다. 샤르댕은 1881년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 지방에서 태어나 18세에 예수회에 입회한 후 신학과 과학을 두루 공부했다. 1911년 사제품을 받은 후 지질학과 고생물학, 고고인류학 등의 분야를 계속 연구했다. 1915~1919년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여러 차례 생사의 고비를 넘긴 체험은 그의 신학사상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1922년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자연과학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23~1946년 중국에 머물며 과학 연구를 진행했고 1929'북경 원인' 발굴 작업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1946~1951년 프랑스 파리에서, 1951~1955년 미국 뉴욕에서 연구를 계속하다가 미국에서 1955년 부활 대축일에 세상을 떠났다. 2005년 샤르댕 사후 50주년을 기념해 유엔(UN) 본부가 '인류의 미래-테이야르의 현대적 의의'라는 제목으로 심포지엄을 개최했을 정도로 그의 업적과 사상적 발자취는 높게 평가되고 널리 인정받고 있다.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샤르댕은 현대 조직신학적 차원에서 처음으로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 개념을 명시적으로 언급하며 과학과 신학의 통합을 시도했던 공로를 인정받는다. 샤르댕의 여러 저서를 통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은 우주 전체의 진화와 발전을 역동적으로 촉진해 마침내 그 모든 것을 완성으로 인도하는 '우주적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적 전망이다. 샤르댕은 우주의 발전과 동시에 그 안에서 이뤄지는 인간의 점진적 진보를 강조했다. 그리고 이 모든 자연적 진화와 발전 과정이 최종적으로 수렴되는 종말론적 완성으로서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를 제시했는데, 바로 이를 그리스도와 연결시켜 신학적으로 개념화하고 해석했다.

 

 다시 말해, 신약성경 바오로서간에 나오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에페 1,3-10; 콜로 1,15-20; 필리 2,6-11 참조)을 근본 바탕으로 샤르댕은 자신의 독창적인 우주적 그리스도 개념의 제시와 전개를 통해 과학적 세계관과 그리스도교 신앙관의 역동적인 통합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묵시 22,13)는 성경 말씀에 근거해 그리스도를 우주의 알파요 오메가로서 우주적 발전과 진화의 출발점이자 또한 종착점으로 제시한다.

 

우주적 진화의 시작과 끝을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 통합

창조와 진화의 통합적 전망 제시

 프랑스 신학자 테이야르 드 샤르댕(1881~1955)이 전개한 보편적 차원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은 우주와 인간의 탄생과 발전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이뤄지고 마침내 완성에 이르는가를 설명한다. 이는 우주의 전체적 진화 현상에 대한 과학적 고찰을 그리스도 중심적 신학 차원에서 새로이 해석해 수용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물론 샤르댕의 사상에 대해선 긍정적 평가와 비판적 평가가 교차된다. 하지만 샤르댕의 가장 큰 공헌은 당시 도저히 양립 불가능하며 심지어 적대적으로까지 간주되던 그리스도교 창조론과 과학적 진화 사상을 통합하는 신학적 전망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이다. 오늘날 우리는 창조론과 진화론의 올바른 관계가 과연 무엇이고 교회가 진화론을 어떻게 평가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잘 알 필요가 있는데,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아는 것은 이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된다.

 

창세기의 신학적 의미

먼저 성경의 창조론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한다. 과학적 진화론자의 창조론 비판, 혹은 창조론에 입각한 진화론 비판의 양쪽 모두에서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 부족이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 유물론적 관점에서 진행되는 극단적 진화론도 배척되어야 하겠지만, 성경을 글자 그대로 정보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려는 축자적(逐字的) 입장 역시 지양돼야 한다. 왜냐하면 창세기 내용은 세상의 기원과 전개 과정에 대한 실제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 목적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창세기를 통해 드러나는 세상의 실재와 인간 존재의 근원적 의미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다.

 

 사실 창세기 111장의 태고사(원역사)는 다른 부분보다 더 후대에 기록됐지만 창세기의 맨 앞에 자리하게 됐다. 구약성경이 전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창세기 12-50장의 '성조사'(聖祖史), 즉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이야기 및 이어지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시작된다고 할 수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의 진정한 하느님 체험은 바로 이집트 탈출 사건에서부터 출발한다. 창세기 저자와 편집자들은 역사적 체험을 통해 이스라엘이 구원자이신 주 하느님께 선택받은 백성이라는 선민(選民) 사상을 펼치면서,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계약을 강력히 드러낸다. 그리고 이러한 계약을 태초의 기원으로까지 끌어올리면서 창세기 111장의 창조 이야기가 형성되기에 이른다.

 

 특히 창세기 13장에서 인간 창조에 관한 이야기가 두 번 나오며 문학적 긴장이 발견되는 것은, 창세기 1,12,4a(기원전 6~5세기의 사제계 문헌)2,4b3,24(기원전 10~9세기의 야훼계 문헌)이 서로 다른 전승에 연유하는 까닭이다. 이 두 전승이 결합돼 편집된 시기는 바빌론 유배 생활이 끝난 직후인 기원전 400년쯤으로 보인다. 이처럼 인간 기원에 대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는 서로 다른 이야기들이 창세기 도입부에 함께 모여 여러 편집 과정을 거치며 문학적 긴장을 자아내는 현재의 형태로 형성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께서 바로 온 세상과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이는 주 하느님에 대한 시각이 이스라엘의 민족신 개념을 벗어나 보편적 창조주의 차원으로 확대됨을 의미한다. 하느님 말씀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지만 이제 이스라엘을 넘어 전 인류를 지향하게 된다. 창세기 편집자들은 이처럼 신관(神觀)에 대한 재성찰을 통해 주 하느님의 권능과 약속에 대한 기대와 전망을 보편적 차원에서 새롭게 함으로써, 바빌론 유배라는 민족적 위기 상황에서 겪어야 했던 어둡고 부정적인 체험을 이겨내는 강력한 희망을 제시하려 했다. 그러므로 창조와 계약을 연결시키는 관점에서 편집된 창세기 도입부는 고통스러운 현재적 체험에서 출발해 태초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일련의 신학적 성찰이며 반성이다.

 

 창조론과 진화론

 이처럼 창세기는 창조 역사에 대한 실제적 객관적 보도가 아니라 하느님 창조에 관한 신학적 메시지를 전한다. , 창세기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구체적인 역사 속에 작성된 신앙고백적 성격을 지니기에 우주의 생성 장면을 직접 목격한 누군가가 마치 구체적 사건 보도를 하듯이 기록한 것이라고 할 수 없다. 창세기에 대한 이러한 신학적 이해에 근거한다면, 우리는 진화론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거나 아니면 일방적으로 배척하는 양 극단을 피해야 한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현대적 논쟁과 관련해 비오 12세 교황(재위 1939~1958)1950년 회칙 인류(Humani Generis)를 통해 가톨릭 교회의 공식 입장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 "교회 교도권은 진화론적 주장이 이미 선재(先在)하는 생물체로부터 유래하는 인간 육체의 기원에 대하여 연구하는 한, 과학과 신학의 현재 상태에 따라 그 양쪽 분야의 전문가들에 의해 진화론적 주장이 연구와 토론의 대상으로서 다뤄지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다만 가톨릭 신앙은 영혼들이 하느님에 의해서 즉각적으로 창조됐다고 생각할 것을 우리에게 의무로서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와 토론은, 진화론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양편의 주장 모두가 마땅히 신중함과 중용에 의해서 그리고 조심스럽게 숙고되고 판단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또 양편 모두는 그리스도께서 진정한 성경 해석과 신앙교리 수호의 임무를 위탁하신 교회의 판단에 승복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여기에서 언급된 인간 영혼이 하느님에 의해서 직접 창조되었다는 관점은 진화론과의 대화와 토론에 있어 결코 가톨릭 신앙이 포기할 수 없는 핵심 논점임이 1966년 바오로 6세 교황(재위 1963~1978)에 의해 재확인된다. 그리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재위 1978~2005) 역시 1996'생명의 기원과 진화'를 주제로 열린 교황청 과학원 총회에 보낸 담화에서 이 원칙을 거듭 천명한다. "진화의 이론들에 영감을 준 철학들에 따라, 인간 정신이 생물체의 힘에서 나온다든지 또는 생물체의 단순한 부수 현상이라고 여기는 진화론들은 인간에 대한 진리가 될 수 없다. 그러한 이론들은 또한 인간 존엄성의 근거가 될 수 없다."

 

 샤르댕의 통합적 전망

 이러한 창조론과 진화론의 상관관계를 이해함에 있어 샤르댕 신학사상은 큰 도움이 된다. 샤르댕에게는 우주의 신비에 대한 관찰과 이해가 과학적 탐구의 목표였다. 그는 지질계로부터 생명의 발생과 인간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우주를 하나의 통일체로 놓고 이에 대한 현상학적 고찰을 추구했다. 그래서 물질에 대한 탐구를 시작으로 생명체를 고찰하던 샤르댕은 '진화'라는 중요한 현상을 접하게 된다. 하지만 샤르댕이 생각한 진화는 종의 기원의 저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을 비롯한 생물학적 진화론자들의 특정 주장에 갇히는 것이 아니었다. 샤르댕의 과학적 진화 현상론은 보다 고차원적으로 만물이 어떤 성장 과정에 의해 존재하게 됨을 말하는 우주 전체의 진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발전 단계 중 생명의 발생과 인간의 출현은 우주 진화의 결정적 현상이다. 그리고 그 상승적 발전 과정이 종결되는 모든 우주적 진화의 최종 수렴점으로서 '오메가 포인트'(Omega Point)가 제시되기에 이른다. 샤르댕은 이 오메가 포인트를 설명함에 있어 세상과 우주 안에 역동적인 사랑의 순환을 가능케 하는 인격적 중심이 존재함을 말하면서, 이를 그리스도교 계시를 통해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시킨다. 이는 나자렛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그리스도의 강생이 우주적 신화(神化)를 위한 결정적 사건이며 궁극적으로는 신성화된 우주를 그리스도 자신에게로 최종 수렴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하여 샤르댕은 육화하신 하느님 아드님의 사건, 즉 그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의 신비로써 모든 '인간 현상'의 전체적 의미가 충만히 드러난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샤르댕의 이러한 사상은 신약성경의 대표적 그리스도 찬가인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15-20절의 우주적 그리스도론을 과학적 언어로 설명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여기에서는 성자 그리스도께서 창조의 중재자이자 원동력이며, 중심이자 목표로서 드러난다. 요한 묵시록에서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창조부터 종말론적 완성에 이르기까지 전체 구원 역사의 우주적 중심에 그리스도께서 자리하심이 드러난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온갖 충만함'이 드러난다고 말하는데 이는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화해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를 '향하여' 완성되어 갈 것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4-10절의 그리스도 찬가에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만물의 수렴'에 대해 말한다. "그것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한데 모으는 계획입니다"(에페 1,10).

 

샤르댕이 말한 '오메가 포인트'는 바로 우주적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지는 종말론적인 '만물의 수렴과 충만' 사상을 과학의 언어로 표현하려 시도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처럼 샤르댕은 우주의 진화를 과학적 차원에서 탐구한 후 이를 신학적으로 재해석함으로써 창조와 진화를 통합하는 새로운 전망을 제시했다.

 

주요 참고문헌 : 창조론, 아름다운 세상의 회복을 꿈꾸며(박준양 지음, 생활성서사, 2008)

 

세계 위에서 드리는 미사

 샤르댕은 자신의 개인적 삶의 여정을 통해 드러난 것처럼 과학적 탐구와 그리스도교 신앙을 통합하는 낙관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세계관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주론적 차원의 신학사상을 전개했는데, 이는 20세기 초중반 당시에 매우 놀랍고도 신선한 충격을 줬다. 한편으로 샤르댕의 신학사상은 그의 생전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교회 안팎에서 많은 논쟁을 유발시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여러 가지 면에서 긍정적인 영향 또한 계속 미치고 있다. 예를 들어 샤르댕의 신학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1965)사목헌장교회헌장작성에 사상적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된다.

 

온 땅을 주님께 드리는 제단으로

 

 우주론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가장 단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은 그가 중국에 가서 지질학과 고생물학을 연구하기 시작하던 시절인 1923년의 신앙체험을 기록한 글 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이다. 당시 그는 학문적 탐사를 위해 몽골 접경지대인 오르도스(Ordos) 사막 한가운데에 머물고 있었다. 마침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을 맞아 새벽에 일어났지만 그는 미사를 봉헌할 도구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렇지만 샤르댕은 아침 해가 떠오르는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아무 도구도 없이 홀로 미사를 봉헌하면서 성체성사의 신비를 온 우주적 차원으로 확대해 거행하는 체험을 했던 것이다(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참조, 김진태 옮김/이병호 감수, 가톨릭대학교출판부, 2004, 표지).

 

 그곳에는 성당도 제단도 없었기에, 샤르댕은 지평선을 바라보며 온 땅을 주님의 제단으로 삼아 미사를 봉헌한다. "주님, 이번에는 아시아의 대초원 안에 들어와 있지만, 또 다시 저는 빵도 포도주도 제단도 없이 이렇게 서서, 그 모든 상징들을 뛰어넘어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순수 실재를 향해 저 자신을 들어 올리려 합니다. 당신의 사제로서, 저는 온 땅덩이를 제단으로 삼고, 그 위에 세상의 온갖 노동과 수고를 당신께 봉헌하겠습니다"(15).

 

 그렇다면 온 땅을 주님의 제단으로 삼아 미사를 집전하는 샤르댕 신부가 빵과 포도주 대신 미사의 예물로 봉헌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세상의 모든 인간과 생명체들이 이뤄내는 삶의 노력과 수고다. "저쪽 지평선에서는 이제 막 솟아오른 태양이 동쪽 하늘 끝자락을 비추고 있습니다. 이 거대한 불이 찬란한 빛을 내며 떠오르면, 그 아래 살아 있는 땅의 표면은 다시 한 번 잠에서 깨어나 몸을 떨며 또다시 그 두려운 노동을 시작합니다. 오 하느님, 저는 새로운 노력이 이루어낼 소출들을 저의 이 성반에 담겠습니다. 또 오늘 하루 이 땅이 산출해낼 열매들에서 짜낼 액즙을 이 성작에 담겠습니다. 이제 곧 지구 곳곳으로부터 올라와 ''()을 향해 모아질 온갖 힘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자신을 활짝 열어 놓고 기다리는 영혼의 깊은 속 그것이 저의 성반이며 성작입니다. 새날을 맞이하라고 지금 빛이 흔들어 깨우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들과 신비로이 하나가 되게 하소서"(15~16).

 

 한마디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우주의 모든 것을 마치 성체성사에 사용되어 거룩하게 변화되고 거양될 '대제병'처럼 하느님께 봉헌한 것이다. 바로 이것이 샤르댕이 발견한 "세계의 성사"(36). "주님, 새날의 첫 새벽에 당신께서 만드신 창조계 전체가, 당신의 이끄심에 따라 움직이며 모든 것을 다 올려 봉헌하는 이 '거대한 제병'을 받으소서. 저희의 노동인 이 빵이 그 자체로서는 너무나 보잘것없는 부스러기일 뿐임을 저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저희의 고통인 이 술 역시 다음 순간에 사라질 하찮은 것임을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볼품없는 물질 덩어리 그 깊이에 당신께서는 거룩함을 향한 어떤 억누를 수 없는 갈망을 숨겨 두셨습니다"(18~19).

 

 샤르댕의 신학사상에 대한 평가

 「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를 통해 샤르댕은 성체성사의 신학을 거대한 우주론적 차원에서 재조명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처럼 우주론적 차원에서 전개되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에 대해 교회 내에서도 많은 반대와 논란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특히 오늘날 샤르댕의 신학사상이 가장 큰 오해를 받는 부분은 현대 뉴에이지(New Age) 운동의 이론가들과 그 추종자들이 '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에 관한 그들의 잘못된 개념과 논리를 합리화하고 정당성을 얻기 위해 샤르댕의 글을 자주 언급하고 인용한다는 점이다. 뉴에이지 사상가들이 주장하는 바는, 세상의 궁극적 실재란 오직 하나의 비인격적이고 신성한 에너지로서의 '우주적 정신'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우주적 차원에서의 비인격적인 궁극적 실재 이론을 내세우는 세계관을 옹호하기 위해서 샤르댕의 저서들이 뉴에이지 운동의 이론가에 의해 계속 인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샤르댕의 사상은 보편적이고 우주적인 그리스도론을 주장하면서도 결정적으로 그리스도 강생 신비의 인격적 차원을 강조한다. , 모든 실재가 혼동 없이 수렴되는 중심으로서의 그리스도는 보편적이면서도 동시에 인격적 실재라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사실 샤르댕의 진정한 의도는 초대 교회부터 전수되는 고전적인 '말씀(Logos) 그리스도론'을 현대 과학사상이 탐구하는 우주적 차원에서 재조명하려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신약 성경의 바오로 서간에 나오는 우주적 그리스도론(에페 1,3-10; 콜로 1,15-20; 필리 2,6-11 참조)을 근거로 샤르댕은 역동적인 현대적 세계관에 맞게 창의적인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우주적 보편성에 관한 신학사상을 전개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재위 2005~2013)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베네딕토 16세는 가톨릭 교회의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 최종 책임자로서 교황청 신앙교리성 장관을 오랜 기간 역임했다. 그러므로 베네딕토 16세의 긍정적 평가는 샤르댕 신학사상의 정당성과 합법성을 모두에게 알려준다. 요제프 라칭거(Joseph Ratzin ger)라는 개인 신학자 이름으로 활동하던 시절인 1968년 출간된 그리스도 신앙 어제와 오늘(장익 옮김, 분도출판사, 2007년 신정판)은 베네딕토 16세의 신학적 기조 사상이 압축적으로 잘 드러나는 핵심 저서다. 바로 여기에서 베네딕토 16세는 샤르댕의 신학사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데, 특히 예수님에게서 드러나는 인성과 신성의 결합 의미를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의 지평에서 설명하고자 시도한 공로를 높이 산다. 그리고 이 평가는 샤르댕의 그리스도론 전체에 대한 훌륭한 요약이기도 하다.

 

 

 

 "이런 연관을 오늘의 세계관에서 새로 생각하고 다소 지나치게 생물론적 경향이 없지는 않았으나 전체로 보아 그래도 옳게 이해했으며, 여하튼 새로이 대할 수 있게 한 것은 테이야르 드 샤르댕의 큰 공로였다고 인정해야 할 줄 안다.여기 현대 세계관의 견지에서 때로는 지나치게 생물학적 어휘를 써 가면서도 근본적으로는 바오로-그리스도론의 방향이 파악되고 새롭게 이해될 수 있게 되었다고 하겠다. 신앙은 예수에게 있어 생물학적 도식으로 말해서 이를테면 다음 단계의 진화적 도약을 성취한 인간, 우리의 제한된 인간 존재 양상과 단자(單子)적 봉쇄에서 탈출한 인간을 보는 것이다. 인격화와 사회화가 더 이상 서로를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뒷받침하는 인간, 지상(至上)의 일치가 또한 아울러 지상(至上)의 개성과 매한가지인 인간, 인류가 그에게서 최대한 자신의 미래로 성취될 수 있는 저 인간을 신앙은 예수에서 본다. 따라서 신앙은 균열된 인류를 유일한 아담, 유일한 '', 미래의 인간존재 안으로 모아들이는 움직임의 시동을 그리스도에서 본다. 신앙은 그리스도에게서 인간이 오히려 '사회화'되고 유일한 분과 일체가 돼 개개인이 붕괴되지 않고 오히려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될 저 미래를 본다"(239~242).

 

 

 세상 자체가 곧 성체가 됨을 향하여

 한편, 20097월에도 베네딕토 16세는 로마서 8장에 대한 강론을 통해 샤르댕이 세계 위에 드리는 미사에서 제시했던 관점을 인용하며 그의 신학사상을 매우 긍정적으로 언급했다. 어쩌면 이는 샤르댕 신학이 담고 있는 최종 지향점에 대한 베네딕토 16세의 영성적 해석이기도 하다.

 

 "사제직의 역할은 세상을 축성하여 세상 자체가 살아 있는 성체가 되도록, 하나의 전례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전례는 세상의 실재와 동떨어진 그 어떤 것이 아니게 됩니다. 오히려 세상 자체가 살아 있는 성체가, 하나의 전례가 되어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테이야르 드 샤르댕에 의해 제시되었던 위대한 전망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에는, 우리가 진정한 우주적 전례를 거행하게 될 것인데, 거기에서는 우주 자체가 곧 하나의 성체가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주님께 도움을 청하며 기도합시다. 하느님께 대한 흠숭 안에서 세상이 새로이 변형될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변형이 바로 우리 자신으로부터 시작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합시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신학과사상합회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