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사진(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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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이 오기까지는 아직 우리들은 어둠에 익숙해야 한다 / 문병란
. 새벽이 오기까지는 / 문병란 새벽이 오기까지는 아직 우리들은 어둠에 익숙해야 한다 어둠에 스며들어 어둠의 일부가 되고 어둠과 속삭이며 오히려 어둠을 사랑하며 속속들이 어둠의 은밀한 가슴을 열렬히 두 팔로 끌어안을 줄 알아야 한다 새벽이 오기 까지는 아직 머언 한밤중, 아직 우리들은 깊은 잠에 빠져서는 안 된다 피투성이 내일을 끌어안기 위하여선 한 톨의 불씨가 되어 묻혀있어야 하고 이 기나긴 공방 비록 신랑이 오지 않는다 할지라도 잿빛 창가에 기대어 서서 먼별의 약속을 믿으며 한 알의 꽃씨를 깊이 간직할 줄 알아야 한다 역사는 언제나 밤에 이루어지는 것 절망은 또 하나의 희망, 그것을 끌어안고 그것을 입 맞추며, 우리는 속속들이 어둠에 녹아들 줄 알아야 한다 피 젖은 어둠의 육신을 사랑 할 줄 알아야 ..
2021.09.21 -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들 - 깊고 푸른 하늘과 아름다운 노을 2021.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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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시 - 문병란
9월의 시 - 문병란 9월이 오면 해변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된다 나무들은 모두 무성한 여름을 벗고 제자리에 돌아와 호올로 선다 누군가 먼길 떠나는 준비를 하는 저녁, 가로수들은 일렬로 서서 기도를 마친 여인처럼 고개를 떨군다 울타리에 매달려 전별을 고하던 나팔꽃도 때묻은 손수건을 흔들고 플라타너스 넓은 잎들은 무성했던 여름 허영의 옷을 벗는다 후회는 이미 늦어버린 시간 먼 항구에선 벌써 이별이 시작되고 준비되지 않은 마음 눈물에 젖는다
2021.09.06 -
구월의 시 - 조병화
구월의 시 - 조병화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의 여름만큼 무거워지는 법이다. 스스로 지나온 그 여름만큼 그만큼 인간은 무거워지는 법이다. 또한 그만큼 가벼워지는 법이다. 그리하여 그 가벼움만큼 가벼이 가볍게 가을로 떠나는 법이다. 기억을 주는 사람아 기억을 주는 사람아 여름으로 긴 생명을 이어주는 사람아 바람결처럼 물결처럼 여름을 감도는 사람아 세상사 떠나는 거 비치 파라솔은 접히고 가을이 온다 (조병화·시인, 1921-2003)
2021.08.31 -
日旣暮而猶煙霞絢爛 해질 무렵 노을이 더 찬란하다.
날이 저물어가는 시간이 되면 황홀한 노을을 기대하게 된다. 가끔은 기대보다 더 황홀한 노을을 보면서 감탄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다. 삶을 마무리하는 날들을 향기롭게 그리고 황홀한 노을처럼 찬란하게 지내자고 다짐한다. 日旣暮(일기모), 而猶煙霞絢爛(이유연하현란); 歲將晩(세장만), 而更橙橘芳馨(이갱등귤방형). 故末路晩年(고말로만년), 君子更宜 精神百倍(군자갱의 정신백배) 菜根譚(채근담) 에서 해질 무렵 안개와 노을이 더 찬란하다. 세모가 되어야 감귤은 짙은 향기가 밴다. 그러므로 군자는 말로(末路)와 만년에 그 정신이 백배나 더함이 마땅하다.
2021.08.28 -
무궁화 - 비오는 날
무궁화 - 비가 내리던 날 세미원에서
2021.08.26